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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용서란 무엇일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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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우리는 많은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면서 살아간다.

아마 아무런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구분을 해보자면,

실수는 내가 원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 잘못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했지만 그 결과가 원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사용하는 것 같다.

보통 실수로 돈을 잃어버리지만, 잘못해서 돈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돈을 잃어버릴려고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잃어버린 걸 실수라고 하고,

돈이 땅에 떨어진걸 알았지만 줍지 않고 있다가 잃어버렸다면 잘못이라고 한다.

이 둘의 차이는 매우 크다.


그냥 내 돈을 잃어버린 일이라면 상관 없을 수도 있겠지만, 남의 돈을 잃어버렸다면 일이 달라진다.

물론 두 경우 다 남의 돈을 물어줘야겠지만, 마음가짐이 다르단 이야기다.

만약 내가 직장 상사고 내 부하직원이 회사 돈을 다루는데 "실수"로 돈을 잃어버렸다면 그 돈을 복구하는데서 일을 마무리 지을 것이다.

(물론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주의시키고 장치를 마련하겠지.)

하지만 잘못을 해서 돈을 잃어버린거라면 돈을 복구하는 건 물론이고 어느 정도의 징계도 같이 줄 것이다.

특히 그 잘못에 대해 어떻게 반성하느냐에 따라 경중이 달라지겠지.


여기에서 용서라는 개념이 나온다.

실수를 용서하는건 꽤 쉽다.

왜냐하면 실수를 저지른 사람도 그 일을 일부러 벌인게 아니고, 그걸 원하지 않았다는걸 알기에 그 마음이 헤아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을 저질렀다면 용서하는게 쉽지만은 않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런 일이 생길만한 일을 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결국 잘못이란건 자초한 일이란 의미기도 하니까......



영화 "남영동1985"를 봤다.

맨 마지막에 "김종태"와 "이두한"이 만나게 되는데, "이두한"은 "김종태"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는 "김종태"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뜨면서 끝난다.


영화를 봤거나, 영화 주인공의 실제 인물인 "김근태", "이근안"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그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얼마나 참혹한 관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은 워낙 복잡하고 다양해서 똑같은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지만, 굳이 비슷한 식의 예를 들자면 자녀를 죽인 살인자를 대할 때, 내 부인 혹은 딸을 성폭행한 파렴치범을 대할 때...... 그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라는건 그 일을 직접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관계일 것이다.


영화에서 "김종태"는 "이두한"에게 극심한 고문을 당한다.

차마 두 눈 뜨고는 보지 못할 참혹한 고문...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의 고문...

인간성은 사라지고 마치 본능에 충실한 동물이 되어버리는, 그래서 그저 고통만 아니라면 뭐든 다 해버리는 고문...

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었고 고문을 하는 사람도 옆에서 볼땐 인간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세상이 바뀌고, 고문을 하는데 일조했던 몇명과 "이두한"은 감옥에 들어가게된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김종태"에게 누군가가 "이두한"이 성경공부를 한다던데 한번 만나봐라 라고 하지만, "내가 만나기 싫어요"라며 "김종태"는 만남을 거부했었다.

(물론 나중에 다시 만날 결심을 한 뒤, 둘만 면회실 만남을 하고, 거기서 "이두한"은 "김종태"에게 용서를 해달라고 한다.)



용서......


우리는 왜 용서를 해야하는 것일까?

내 잘못을 남이 용서해주는걸 우리는 바란다.

내가 진심으로 사죄를 했는데도 용서해주지 않으면 왠지 야속하고 미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남을 용서하는건 쉽지 않다.

너무 미워서 그 사람이 멸망하길 기도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상대방이 내게 용서를 구하지 않아서기도 하지만,

"김종태"같이 상대방이 용서를 구해도 도저히 용서를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우리는 왜 용서를 해야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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