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즐겨듣는 팟캐스트가 있습니다.
"그것은 알기 싫다"라는 팟캐스트인데, 진행자가 그러더군요. 정치는 쇼라고.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것을 바꾸는게 정치지만, 동시에 사람들에게 보여지는게 정치라는거죠.
민주당이 환골탈태한다고 많은 진통을 겪었습니다. 문재인의원이 당대표를 하면서 이런 저런 말이 많았죠.
그래도 결국 나름 할 일을 하고 대표직을 내려놨습니다. 이건 이제 잘했는지 아닌지 평가 받게 되겠죠.
하지만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 쇼였느냐에서는 쉽게 답을 하기 어렵습니다.
진보적인 법안이 통과되고 실제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이게 잘 홍보되지 않아서 당의 힘으로 연결되지 않은게 현실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언론 장악 등등으로 현 야권은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제대로 된 쇼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세월호 정국때도 뭔가 아쉬웠습니다.
이번에 테러방지법(이라고 쓰고 국민사찰법이라고 읽습니다) 직권상정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는 그런 점에서 매우 효과적인 쇼였습니다.
실제로 적어도 야권에 실망하고 있는 사람들은 필리버스터에 관심을 집중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야권을 응원했습니다.
언론이 집중해주지 않아도 효과적인 쇼라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실제적인 효과는 뭐가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필리버스터는 무제한 토론을 말합니다. 합법적의사진행방해 행위지요.
(이 법안이 새누리당의 공약이라는 것은 이제 다들 잘 아실겁니다.)
필리버스터는 "방해행위"지 "저지행위"는 아닙니다.
국회회기가 종료할 때까지 지속할 수는 있지만, 회기가 종료되면 필리버스터도 종료되고, 자동으로 다음 회기가 시작하자마자 표결에 붙이게 되어있습니다.
즉 실제로 법안 상정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건 직권상정을 할때부터 예견된 일이었죠.
물론 일단 지연시켜놓고 다시 협상을 할 수는 있지만, 어차피 귀막고 손사래치는 여당을 상대로 야당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직권상정이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국회의장 혼자 비상사태라고 지적해도 아무런 말이 안통합니다.
이번 필리버스터는 대국적 정치쇼입니다.
그리고 이번 쇼는 실제적인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제 표는 얻을 수 있었습니다. 회기 말까지 지속했다면요.
그 쇼를 계기로 실제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이제 중단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아무런 법안 변화도 없이 중단한답니다.
이유야 말이 많죠. 선거구획정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둥 어차피 통과될 법이었다는 둥...
다시 말하지만 그런 실질적인 이유였다면 필리버스터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애초에 "방해행위"일 뿐, "저지행위"는 아니기때문입니다.
일단 앞뒤가 맞지 않죠.
선거구 획정...
사실 선거구 획정에 대해서는 작년 말에 통과되는게 맞습니다. 대법원에서 그렇게 하라고 했죠.
하지만 당시 여당이 선거구 획정을 통과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필리버스터를 한 것도 아니었죠.
정치적 공세 속에서 여당은 선거구 획정과 노동개혁법을 묶어서 통과시킬려고 했고 그래서 선거구 획정은 자꾸 미뤄졌던 것입니다.
애초에 책임은 야당이 아니라 여당에 있는거죠.
그걸 이제 와서 야당 책임이라고 하는거 전형적인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주장이죠.
(그 선거구 획정안이 참 마음에 안드는건 차치하더라도요.)
하지만 어쨌든 이 모든걸 야당 책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살펴봐야죠.
과연 그 사람들이 야당을 지지할까요? 야당에 표를 줄 사람들이 야당때문에 일이 안된다고 할까요?
아무리 고민해봐도 그건 말이 안되죠. 야당을 지지한다면 여당이 고집불통이다 라는 말을 하는게 맞죠.
즉 야당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당 지지층일 가능성이 큽니다.
종편 뉴스를 즐겨보고, 조중동을 보는 사람들이 과연 야당에게 표를 줄까요?
야당에게 표를 줄 사람은 적어도 종편과 조중동을 보더라도 잘 걸러서 봅니다.
종편과 조중동만 보지 않고 다른 언론 기사도 찾아 볼겁니다.
야당은 자기 지지층을 확고히 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여당은 나라를 팔아도 찍어주겠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지지층이 확고합니다.
하지만 야당은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물론 나라를 팔라는 말이 아니라는 건 잘 아시겠죠;;
아무튼,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결집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야당의 분열이었죠.
국민의당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못한 것도 그 이유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야당의 무능입니다.
지지층이 없어서 무능하다는 것과 무능해서 지지층이 없다는 것은 매우 다른 말입니다.
법안 통과등 숫자로 싸워야 하는 것에서는 지지층 탓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싸우는건 숫자와 상관 없습니다.
야당을 지지하려고 하지만 무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지점을 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흔들어라! 저들이 하고 싶은 일은 결국 하겠지만 계속 흔들어서 스크래치라도 내라!
그 활동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게 이번 필리버스터였고, 많은 사람들은 그런 점에서 이 필리버스터에 열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회기 종료로 인한 중단이 아닌, 새로운 협상안으로 인한 중단이 아닌, 다른 이유로 필리버스터를 중단한다면,
그건 야당의 "무능"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꼴 밖에 안될 것입니다.
그렇게 야당의 무능을 본 야당 지지자들은 다시 좌절할 것이고, 투표장에 가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지난 17대 대선때 정동영 후보의 득표율이 낮은 이유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저 무능하다고 판단되면 표를 주러 가기도 싫어지거든요.
따라서 필리버스터를 중단한다면, 야권은 필패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제일 싫은 부분인데, 아무리 싫어도 새누리당이 당선되는건 싫으니 더민주당을 찍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악만 피하자는거죠.
하지만, 이제는 결단해야합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반사이익만을 노리는 당에 표를 줘야하나요?
만약 더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끝까지 해내면서 처절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또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저는 더민주당에 표를 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사표가 되면 되었지, 표를 쉽게 줄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저는 민주당을 새누리당 2중대라고 부르는 말에 반감을 가졌습니다.
그래도 다르지 않느냐...
그런데,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민주당이 이런식으로 새누리당을 등에 업고 의석을 가져간다면, 진짜 새누리당 2중대라는 반증이겠죠.
더민주당은 필리버스터를 끝까지 하길 바랍니다.
이기면 좋겠지만, 지더라도 처절하게 싸우다 지길 바랍니다.
그래야 선거도 이길 수 있습니다.
국민을 얻고자하면 의원직도 얻을 것이요. 의원직을 얻고자하면 국민도 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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