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자라서 여성의 인권에 대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제 본의는 사라지고 진영논리만 남게 된다는 것을 그동안 여러 이야기들을 접하며 경험접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개된 곳에서는 가급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내가 직간접적으로 관여된 일에 대해서만 입장을 이야기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그 주제가 다른 논란으로 덮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랬습니다.
그래도 어느정도 제 생각을 정리할 필요는 있겠다 싶어서 여기에 글을 남깁니다.
이 글은 현재의 제 생각이고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바뀔 수 있고, 그러기 위한 토론은 열린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저는 전병욱 목사 성추행 사건을 접하면서부터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밤에 골목길을 지나가다가 변태를 만난 정도의 일만이 아니라, 여성을 비하하고 성을 상품화 하는 식의 말(성희롱)정도의 일만이 아니라, 실제로 여성의 몸을 허락 없이 슬쩍 만지며 아무렇지 않은듯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그 수위가 천차만별일 정도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물리적인 위협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일은 정말 어려워서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도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겠지만, 제가 전병욱 목사 성추행 사건을 다루면서 들은 수많은 이야기들에는 대체적으로 공통점이 보였습니다.
(이 글에서 "가해자로 볼 수 있는 사람", "피해자로 볼 수 있는 사람" 이라고 일일이 쓰기 어려우니 "가해자", "피해자"라고 호칭합니다. 법적 판단을 받은 경우에는 따로 특정하도록 하겠습니다.)
1. 위계(권력 관계)
가해자와 피해자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대체로 오래 알고 지냈고, 시간이 오래되진 않았더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자주 만나는 등 소위 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확실한 위계가 있었습니다. 교회로 말하면 목사와 교인의 관계, 목사와 부교역자의 관계, 간사와 팀원의 관계 등 조직 내에서 호칭으로 알 수 있는 위계가 있었고, 가해자는 위계를 활용해 접근하고 성추행등을 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 사회에서 나이로 시작되는 위계가 매우 일상적이기때문에 대체로 나이+권력이 동시에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지속성
저는 전병욱 목사 성추행 사건을 처음 파악하면서 피해자가 왜 도망치거나 신고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두려움으로 몸이 얼어붙는 경험을 한 적이 없어서 피해자들을 경험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이야기들을 듣고 실제로 본 일들을 종합해보면서 왜 피해자가 도망치거나 신고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이는 권력관계와도 연관이 있는데, 어떤 조직의 수장이 가해자가 되었다고 하면 온 조직 구성원들이 가해자를 쉽게 두둔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문제제기를 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경험을 하거나 그런 이야기를 듣게되면, 일단 사건이 터져도 신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피해자는 그 조직에 생계를 포함한 많은 것들이 걸려있기때문에 도망치는 것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조직 내에서 폭로를 하지 못하더라도 경찰에 신고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대체로 경찰에 신고를 한다는 게 쉽지 않고, 성추행이라는게 대체로 증거가 없기때문에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하는 피해자로서는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피해자는 조직에 계속해서 남아있게 되고, 가해자는 그런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추행하고, 일반적으로는 점점 더 과감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지속성은 한명의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가해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가해자의 행위에 지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가해자가 단 한번만 사건을 일으킨 경우는 없었습니다. 들켜서 더이상 못하게 되었느냐 아직 안들켰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가해자는 피해자가 한명이든 여러명이든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벌입니다.
3. 가해자의 당당한 태도
일반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다고 느끼며, 사건이 생겼을때 미안함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추행의 경우는 가해자가 미안해하는 경우를 거의 못봤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성추행을 시도했을때 피해자가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할 경우 오히려 쿨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는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데,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일이 아니며 오히려 연애 감정으로 한 일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사건이 알려졌을 때 그저 면피하기 위해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가해자가 한 일이 정당화 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위의 사례에 꼭 맞지 않는 성추행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제가 파악한 바로는 거의 모든 성추행 가해자는 비슷한 태도를 보이더군요.
으슥한 골목길에서 만나게 되는 변태도 그렇고,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복잡한 틈을 타서 성추행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안보이게 잘 숨겨서 몰래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경우에도 위 세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불특정다수를 겨냥한 행동이지만 일종의 권력 관계(익명성, 은폐 등)가 형성되어있고, 그 가해자는 단 한번만 성추행을 하는 게 아니라 다음 기회를 엿보고, 기회가 생기면 또 다시 성추행을 합니다. 그리고 걸렸을 때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가해자의 태도에 대해서는 상황에따라 다르기때문에 다양한 변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위 공통점들은 딱 하나로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위계.
그게 없으면 그 다음 지속성과 가해자의 태도도 나오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위계가 있을 수도 있고, 사회가 용인하고 등급지어둔 위계도 있지만 이런 모든 위계 속에서 성추행은 벌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계가 뚜렷하다고 볼 수 있는 군대에서는 동성애와 상관 없이 후임병을 향한 성추행이 생기기도 합니다.
과거에 저도 그랬지만 우리는 몇가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추행은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남자들이 벌이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죠.
저 역시 그랬었습니다.
물론 꽤 많은 남자들은 성에 대한 여러가지 환상을 가지고 있고,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꽤 많은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식욕이 생겼다고해서 아무 음식이나 막 먹지 않듯이 성욕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경우라면 절제를 합니다.
함부로 다른 사람을 함부로 건들면 큰일이 난다는 것을 학습과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성추행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결국 성추행은 권력을 가진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향해 행하는 범죄입니다.
서로의 위계질서가 확립되지 못한 경우에는 가해자가 성추행을 시도하지만 미수에 그치거나 피해자의 질타를 맞게 됩니다.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엄청나게 꼬여있는 우리나라의 성추행 문제를 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글은 이제 시작입니다.
기회가 되는대로 몇개의 글을 더 적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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